애플워치 울트라1과 함께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심지어 2와도 동시출시되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티타늄 밀레니즈루프는 애플워치 울트라를 위한 완벽한 시곗줄 입니다.
티타늄 밀레니즈루프는 기존 스테인리스 스틸 밀레니즈루프(이하 스텐 밀레니즈루프)와 비교 해봐도 모든 면에서 개선되었고, 또한 완벽히 애플워치 울트라만을 위한 제품으로 탄생했습니다. 기존에 적당한 금속 시곗줄이 없어서, 혹은 써드파티 제품들이 마음에 안들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스텐 밀레니즈루프를 쓰셨던 애플워치 울트라 사용자 분들이라면 이 제품 반드시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존 스텐 밀레니즈루프와 비교해서 뭐가 더 나아졌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무게가 확 줄었다. 이름만 봐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티타늄 밀레니즈루프는 전체가 그레이드5 티타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덕분에 스텐 밀레니즈루프에 비하면 무려 6그램이 줄었죠. 새로운 형태의 버클 시스템이 달려있는데도 말입니다.
티타늄 밀레니즈루프스테인리스스틸 밀레니즈루프전체 무게가 100그램 아래로 내려왔습니다그레이드5 티타늄
두번째, 더 이상 안 흘러내린다. 스텐 밀레니즈루프 사용자의 가장 큰 불만은 바로 쓰다보면 슬슬 풀려서 내려가는 자석 버클일 것입니다. 특히나 고정을 얇게 붙어있는 고무 패킹에 의존하기 때문에 오래 쓰면 쓸수록 더 쉽게 느슨해지죠.
애증의 자석 버클
티타늄 밀레니즈루프는 코브라 버클(가방이나 버클류 관심있는 분이라면 아시는 그 제품입니다) 형태의 새로운 고정 시스템으로 아주 단단하게 고정되고 풀때는 원터치로 쉽게 풀립니다. 단점이라면 그냥 휙 감아서 착 붙이면 끝나는 자석버클에 비해 직접 결속부에 끼워넣어야 한다는 점이겠네요. 하지만 쓰고 벗는건 하루 두번이지만, 하루 종일 안 풀리는게 더 중요한 저에게는 사소한 단점입니다.
결속 해제된 버클착용한 모습윗 부분을 젖히면 위치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 애플워치 울트라 본체와 동일한 무광 마감 처리가 되어 있다. 그렇습니다. 애플워치 울트라 사용자의 스텐 밀레니즈루프에 대한 불만사항 2번, 유광 마감이죠. 유광도 나쁘진 않은데… 애플워치 울트라 본체랑 다른 마감이라 은근 거슬리고 신경쓰입니다. 그래서 티타늄 밀레니즈루프의 무광 마감이 더 반갑고, 촉감도 부드러워서 더 좋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본체와 동일한 마감
네번째, 약간 더 넓어졌다. 스텐 밀레니즈루프는 원래 애플워치 울트라용이 아닌, 46미리 애플워치용 제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애플워치 울트라와 사용하면 약간~ 애매하게 빈약해보인다는 느낌을 주죠. 티타늄 밀레니즈루프는 대략 1미리 정도 미세하게 넓습니다만, 알이 굵어진 루프들과 어우러져서 49미리 크기의 애플워치 울트라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줍니다.
넓이는 미세하게 넓지만 알맹이(?)가 꽤 굵어졌습니다.
이렇게 왜 티타늄 밀레니즈루프가 애플워치 울트라와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여기까지 보셨으면 당장가서 하나 구매하시면 됩니다. 물론 배송은 2주 뒤입니다. 저는 애플 키노트 당일에 애플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는데 한 달을 기다렸습니다…
더 원더(The wonder), 2022, Sebastián Lelio
줄거리
영화는 제4의 벽을 넘으며 시작됩니다. 영화의 나레이터이자 출연 배우 중 한명인 ‘니암 알가’가 세트장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가설 건물이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창고에서 ‘더 원더’라는 이름의 영화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려주죠. 그리고 이야기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세트장 안으로 카메라가 줌인되고 영화가 시작됩니다.
간호사 라이트(플로렌스 퓨 분)에게는 아일랜드 지방에 사는 애나라는 소녀가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않고도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단순한 눈속임인지 기적인지 밝혀내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당연히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어떤식으로든 눈속임에 불과함을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원회로부터 그녀가 4개월째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마을의 위원회는 눈속임이든 기적이든 어떤식으로든 사태를 정리하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간호사 1명과 수녀 1명을 불러서 직접 관찰하게 하고 확실히 증명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라이트가 몸을 만져보는 등 건강상태를 체크할 때나, 장기적으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의 위험성을 말할 때 마다 애나는 미묘한 웃음을 짓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먹고 살아있다고 말하는 등 자신은 당연히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첫 만남
애나의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라이트는 아이는 없고 남편과도 1년 만에 사별했다고 둘러대지만, 사실 그녀는 아이를 낳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죽었죠. 그렇기에 매일밤 그 아이를 그리워하며 (혹은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작은 아기용 발싸개를 들여다보고 그러다 아편 물약을 들이켭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서 피를 냄으로써 자신만의 속죄의 의식을 합니다.
영화는 내내 플로렌스 퓨(라이트 역)가 무언가를 먹는게 자주 나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무언가를 먹고 있죠.(바다위에서 흔들리는 배가 배경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위장의 소유자입니다.) 애나가 먹는 것을 거부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이 미신적 행동이라면 뭐든지 잘 먹는 라이트는 그 반대인 과학적 사고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지만 하정우 배우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또 한명의 주요 등장인물인 기자 윌은 그런 라이트의 먹방(?)에 시비를 걸며 첫 등장합니다.
그리고 윌은 라이트에게 바다 건너 아이의 간수 노릇하러 온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이러한 질문 자체가 극 중에서 의미하는 바로 라이트는 아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적 행세하며 금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고, 그렇기때문에 먼 곳으로 와서 아이를 구하려 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와 별개로 라이트는 영화 내내 객관적 관찰자의 태도로 관찰하고 노트에 무언가를 적습니다. 극 중에서도 라이트는 애나에게, 자신은 그녀가 음식을 못 먹게하기 위한게 아니고 그저 관찰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키티로부터 애나가 마지막에 먹은게 성체임을 듣는 장면에서도 성체가 예수의 피와 살이라는 키티의 말에 그것은 그저 이야기이고, 실은 밀과 물이지 않느냐고 반박하며, 역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습니다.
키티는 이런 라이트의 말에 반박하며 당신에게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노트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으라고 충고하죠.
그 직후, 키티는 배우 ‘니암 알가’가 되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나레이션으로 관객에게 말합니다. ‘이야기가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다’
라이트도 언젠가 관찰자의 입장을 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될까요?
영화는 언뜻보면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듯한 느낌을 줍니다. 기도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기독교 수호성인의 그림도 나오죠. 시대적으로 볼 때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기에 특별한 양상을 보이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간호사와 수녀입니다. 라이트가 왜 간호사 둘이 아니고 한명은 수녀인지 물었을 때, 그녀를 부른 사람인 의사는 수녀도 간호사나 다름 없다고 말합니다. 그야 물론 그것이 기적인 경우 전문성은 간호사보다는 수녀가 더 높겠지요.
이를 통해 과학적 사고와 아직은 미신이 뒤섞여있는 과도기적 시기임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요. 게다가 마을에서 가장 과학과 가까워보이는 의사는 애나가 식사를 하지 않고도 건강한 이유에 대한 가설로 각종 비과학적인 이론들을 말합니다. 아무래도 1862년의 아일랜드는 과학보다는 미신의 영향력이 더 큰 것 같네요.
그리고 위원회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증명을 위해 간호사와 수녀를 불렀지만, 동시에 그것이 기적이 아님이 증명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확실한 관찰을 위해 병원으로 아이를 옮겨야 한다는 말에는 아이의 가족이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거절하죠. 이러한 것들은 나중에 아이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더욱 강해집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이가 살아서 기적이 될 수 없다면, 안타깝지만 죽어서라도 기적이 되어야 하죠.
마을의 위원회
라이트는 애나가 자신을 라이트 간호사님이라고 불러주길 원하지만 애나는 거부하고 그녀의 애칭을 알아내고자(혹은 지어주고자) 합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라이트도 애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불러주겠다고 하는데, 이러한 라이트의 심술에 대해 애나는 라이트가 그렇게 이름을 바꿔부르면 그로인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라이트가 새로 지어준 낸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라이트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릴때 불렀던 애칭인 립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죠.
이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기독교적 미신에 얽매여있는 애나를 떠내보내고, 낸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여느때처럼 수녀님과 교대 관찰을 이어가고 있던 라이트는 어느날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언뜻보면 평소처럼 애나와 그 어머니가 침대 맡에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머니와 입술로 진한 입맞춤을 나누더라는 것이었죠. 부모 자식간에, 그것도 어머니와 딸이니 크게 이상하다고 볼 것도 아닌거 같지만, 라이트의 머리속에서는 한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입 안에 음식을 숨겨서 딸에게 먹여주고 있었던 것이죠.
그것을 눈치챈 라이트는 자신과 수녀외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기자인 윌 또한 그저 사기극에 불과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전말을 기사로 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라이트는 아이를 구경거리로 만들려는 듯하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분리시켰으니 곧 진실이 드러나리라 생각하는 라이트에게 진실이 드러난다면 아이와 그 가족들이 당할 고난을 상기시켜줍니다. 사기꾼으로서 법정에 서야할 뿐만 아니라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리란 것이었죠.
이제 라이트 간호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는데요. 어머니로부터 음식을 전달받지 못하는 애나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가는데, 과학의 입장에 서 있는 관찰자로서 라이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아이가 굶어 죽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라이트는 키티로부터 윌의 가족이 대기근 때 스스로 집 문을 걸어잠그고 집 안에서 모두 굶어죽었다는 것을 듣습니다. 먹을 것을 찾다 길에 쓰러져 죽는 것을 피하기 위함 이었다고 하죠.
그 말을 들은 후 라이트는 윌에게 동정심을 느낍니다. 그 또한 자신처럼 가족을 잃었죠. 서로의 상처를 느끼고 공감하게 된 순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혹은 서로를 동정할 수 밖에)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같은 목적을 갖게 되었을 겁니다. 진실보다는 애나를 구하는 일
다음날, 윌은 애나에게 소마트로프라는 장난감을 주는데 양면에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실로 꿰어 빠르게 돌리면 양면의 그림이 합쳐져 보이는 착시 장난감입니다.
한쪽에는 새와 다른 쪽에는 새장이 그려져있는 소마트로프를 받아든 애나는 묻습니다. 새가 갇혀있는건지 아니면 자유로운건지. 윌은 대답하죠, 그건 네가 결정하는거라고.
소마트로프를 갖고 노는 애나
라이트는 애나의 부모를 설득하여 애나를 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에게 음식을 먹도록 설득하라고 말하죠. 하지만 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의사를 찾아가서 관찰을 끝내려고도 하는데, 의사는 애나에게 햇볕을 에너지로 바꾸는 능력이 생긴 것이 아닌지 묻는 등 아이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과학의 입장에서 이 기적을 분석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라이트에게 맡은 일이나 잘 하라는 충고를 합니다.
이제 과학이든 미신이든, 모두가 라이트에게는 적입니다. 마을의 어느 누구도 애나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라이트는 결심을 내립니다. 아이를 살리기위해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죠. 처음에는 긴 관을 통해 억지로 음식물을 먹이는 방법을 시도합니다. 음식을 거부하는 환자에게 으레 하는 것 처럼요.
이 시도가 실패한 후 라이트는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것으로는 애나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앞으로도 살아갈 것인지는 애나가 결정해야 할 일이었죠.
애나는 라이트와 윌과 함께 외출을 하는데, 윌을 신성함 샘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신성한 샘은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윌은 라이트에게 애나를 살리려면 위원회를 설득해야한다고 하는데, 라이트는 이미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샘 옆에서 애나가 갑자기 쓰러지고, 이제 애나는 누가봐도 심각한 상태임이 분명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쇠약해져가는 애나
애나를 살리기위해 결국 라이트는 애나에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입으로 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는게 싫다면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애나는 단호히 거부하면서 단식하고 있는 이유를 들려줍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금식하고 기도했었다는 것을요.
애나는 죽은 오빠의 영혼이 지옥에서 불타며 고통받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라이트는 애나에게 오빠는 그저 어린아이였기에 지옥에서 불탈 이유가 없다며 안심시키려 하지만, 라이트에게 아주 어두운 비밀을 들려주죠.
애나의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누이이자 아내이면 곱절의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애나는 그녀의 오빠가 근친상간의 죄를 범했기에 병에 걸려 죽었고, 이후에도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오빠를 사랑했기에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될 오빠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식을 통해 속죄함으로써 그녀의 오빠가 지옥에 가지않고 천국으로 갈 수 있기를 기원했고, 그녀 스스로도 단식을 엄중히 지킨다면 속죄가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죠.
진실
이제 애나는 라이트와의 첫 만남때의 그 모호한 표정을 버리고 울고 있습니다. 모든 가식을 벗어던지고 진실을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바람소리나 빗소리 혹은 잔잔하면서 심심한 배경음악이 주로 사용되었었다면, 이제부터 빠른 템포의 타악기 소리가 배경으로 깔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 라이트와 윌이 보입니다.
라이트는 위원회를 불러모아서 진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답이 나왔으니 관찰을 멈추길 간청합니다. 하지만, 위원들은 그녀의 말이 거짓말이라며 부정하죠. 그리고 간호사를 데려온것은 큰 실수였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이들은 무엇이 진실인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과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기적임을 확실히 하고 싶었을 뿐이죠.
그리고 위원들은 수녀에게 애나가 어머니에게서 입으로 음식을 받아먹는 것을 본적있냐고 묻는데, 수녀는 잠깐 망설이지만 본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황당하게도, 수녀의 말만으로 위원들은 라이트의 말이 거짓임을 확신합니다. 처음에는 대등하게 관찰자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종교쪽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래도 라이트가 굽히지않자 애나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합니다. 물론, 애나는 부정합니다.
위원회는 관찰을 계속하도록 명령합니다. 절망한 라이트는 전에 해봤던 것 처럼 환자가 죽을때까지 돌보겠다고 말하죠. 이후에도 어떻게든 애나를 살리기위해 그녀의 어머니를 설득해보려고 하지만 역시나 실패합니다.
이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고, 라이트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제 그녀는 관찰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를 빼돌리려는 계획을 윌에게 말해주지만, 윌은 그런 그녀를 미쳤다고 합니다. 애나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도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이라면서요.
그런 윌에게 그녀는 도와달라 간청하며, 이것이 그들에게 새 이야기이자 새 삶이 될 수 있을것이라 설득하며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누군가 윌의 가족을 도왔었더라면 어땠겠냐고 말합니다.
윌 번
라이트는 죽어가는 애나에게 그녀가 곧 하느님 곁으로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죽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그녀의 오빠가 죄를 짓기 전 그녀로 다시 태어날거라고 말하죠. 다시 태어날 그녀에게는 어떤 나쁜일도 일어난적이 없었다고요.
다시 태어날 그녀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묻는 라이트에게 애나는 이전에 라이트가 지어준 자신의 애칭인 ‘낸’이라고 합니다.
애나는 이제 선택을 할 겁니다. 애나는 죽고 낸이 살아갈 것입니다.
신성한 샘으로 애나를 데려간 라이트는 그곳에서 애나를 떠나보내고 낸으로 되살리는 일종의 의식이자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라이트는 낸으로서 깨어난 그녀에게 우유에 적신 빵을 입 안에 넣어줍니다.
성찬식에서 성체를 마지막 식사로 먹으며 금식을 통한 속죄를 결심했던 애나는 낸이 되어 우유에 적신 빵을 먹게 되었습니다.
낸을 가족들로부터, 마을로부터 떼어놓기위해 라이트는 그녀의 가족이 살던 집에 불을 지르려고 합니다. 기름을 뿌린 후 불을 붙이기 직전 아편약병을 깨버리고 소중히 간직했던 아기발싸개를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불이 번져가는 집안에서 한동안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라이트에게도 불이 옮겨붙고, 놀란 그녀는 집을 뛰쳐나갑니다. 몸에 붙은 불은 겨우 꺼졌지만 손을 다쳤습니다. 그렇게 그녀도 불 속에 과거를 버리고 그녀 자신도 속죄한거 같네요.
이후 위원회에 가서 그동안 관찰의 결과가 쓰여있는 노트를 제출하는데, 거기에는 애나가 어떻게 죽었는지 적혀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죠.
그렇게 진실을 밝히기 위한 도구였던 노트는 이제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려고 결심한 순간 버려져서 그녀의 새 출발을 위해 쓰일 뿐입니다.
라이트의 다친 손을 치료해주던 수녀는 미사를 드리던 중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요. 실은, 그녀가 낸을 데리고 떠나던 윌을 본 것이었죠. 낸이 더 좋은곳으로 갔냐고 묻는 것을 끝으로 수녀는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는것 같습니다.
재회
마지막으로 사건의 결말을 보도하는 윌의 기사가 적힌 신문을 읽는 키티가 나옵니다. 극 중 내내 글을 잘 읽지못해 애나에게 배우던 그녀는 역시나 더듬더듬 신문을 읽어나가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며 나레이션으로 계속 읽어나가는데 이때는 더듬거림없이 유창하게 읽음으로써 나레이터인 배우 ’니암 알가’로 전환됩니다.
이후, 런던에서 윌 그리고 낸과 함께 재회하게 된 라이트는 시드니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싣는데요. 이때는 낸이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마치, 이제 내 얘기는 끝났고 당신은 어쩔거냐고 묻는듯한 눈빛입니다.
마지막은 처음과 같이 세트장을 배경으로 니암 알가 배우가 등장하여 '안'과 '밖'을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소마트로프를 가지고 놀던 애나가 했던 대사인데,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하는 니암 알가 배우를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도 어떤 선택을 할 지 묻는거 같습니다.
영화 전체에 풍부한 은유와 상징들이 깔려있고 조금씩 곱씹어보면서 감상해야할 부분들이 많아서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천천히 다시 두번을 보았는데 처음 감상했을때와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져서 똑같은 내용을 연속으로 보았지만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뛰어난 영상미 덕분에 더욱 그러한데, 제 생각에는 분명히 디지털 촬영을 했을것인데도(검색해봐도 딱히 필름 촬영 했다는 내용이 있는 글은 못 찾았습니다) 시작부터 옛날 필름 영화 느낌의 노이즈와 글자의 폰트, 떨림 등이 옛날 감성을 불러일으키는것 같아서 좋았고, 조명을 사용하지 않은 듯한 어두침침함과 그 사이에서 자연광으로만 찍은듯한 장면들이 오래된 고전 영화같은 느낌을 더욱 잘 살려준것 같습니다.
더 원더는 BIFA(British Independent Film Awards)에서 Best original music 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 내내 잔잔하면서 신비로운 음악과 낮은 으르렁거림같은 음악이 삭막해 보이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깔리는데요. 또한, 배우들의 작은 숨소리와 배경의 바람 소리 등도 영화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소리에 집중하면서 보시려면 헤드폰끼고 감상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개인적으로 플로렌스 퓨는 내면의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미드소마에서도 내면의 고통을 가진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깊은 고통과 그것의 해소를 연기하죠.
입을 약간 벌리고 커다란 앞이빨을 내민체 멍해보이는 애나를 연기하는 킬라 로드 캐시디의 모습도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점은 애나를 연기한 킬라 로드 캐시디의 어머니인 일레인 캐시디가 극 중에서도 애나의 어머니 역할로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애나가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나오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대니얼 콴, 대니얼 샤이너트
간단 감상평
보고나서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은 영화는 오랜만입니다
스토리는 진부하면서 감동이 있고,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습니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산만해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다중우주라는 소재로 이렇게 깔끔하고도 유머러스한 가족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감독의 역량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상미에 액션의 쾌감을 비롯해 결말의 카타르시스까지 모든것을 갖췄으면서도 스토리는 단순하고 진부하지만(가족 간 세대 갈등과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화해)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영상에 몰입하기는 더 좋습니다.
내용을 곱씹으면서 봐도 좋고, 뇌 빼놓고 봐도 좋은 그런 영화입니다.
어쨌든 재밌습니다.
시간나면 한번 더 보고 싶습니다.
줄거리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중우주를 빼면 평범한(진부한?) 가족드라마입니다.
엄마(미셸 여, 이블린 왕 역)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 1세대 중국계 미국인이고, 남편과 함께 타국으로 이민와서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낸 인물입니다. 하지만 최근 세탁소에 대한 세무조사로 인해 고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연로하신 아버지도 돌봐드려야 하고, 최근 딸의 행동은 영 마음에 안듭니다.
그리고 웨이먼드와 결혼하면서 포기해야했던 자신의 꿈도 아직 마음 한켠에 남아있죠.
딸(스테파니 수, 조이 왕 역)은 레즈비언이고 자유분방한 삶을 원하는데 엄마는 그게 마음에 들지않아 항상 간섭하죠.
그리고 아빠(케 후이 콴, 웨이먼드 왕 역)는 그들의 사이에서 지쳐가고 있습니다. 이혼 서류를 항상 품에 갖고 다니며 아내와 대화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가족 휴먼 드라마같은 일상에 다중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가 나타나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알파버스의 웨이먼드
웨이먼드의 몸에 들어온 다중우주의 알파 웨이먼드는 이블린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다중우주의 힘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않을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다중우주의 또 다른 자신이되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알파 웨이먼드와 대화하는 사이, 세무조사는 꼬여가고 있었습니다.
놓고 간 물건을 돌려주려는 세무조사원(제이미 리 커티스, 디어드리 역)을 오해하고 폭행하면서 상황은 절정에 이르는데요. 그 순간 알파 웨이먼드가 립밤을 씹어먹고(!) 다중우주의 무술 고수인 또다른 자신으로 점프합니다.
다중우주의 또 다른 나는 무술가이자 성공한 영화배우입니다.
그렇게 경비원들을 물리치고 난 후 무엇때문에 이런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 해줍니다.
이블린의 차원과 멀리 떨어져있는 알파버스의 알파 이블린이 다중우주의 또 다른 자신과 연결하는 방법을 최초로 발견했고, 알파 조이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능력을 극한으로 발휘하도록 밀어붙이는데요.
이 과정에서 알파 조이는 정신이 조각조각 깨어지면서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알파 웨이먼드의 말에 따르면)아무 이유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빌런인 조부 투파키가 됩니다.
알파 조이는 정신이 깨지면서 조부 투파키가 되었고, 모든 다중우주의 자신과 동시에 교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다중우주의 다양한 자기자신을 숨 쉬듯 끌어다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는데요.
이 능력은 화려한 액션씬에서 진가가 드러납니다. 다중우주의 자기자신으로부터 가져온 다양한 능력을 쓰면서 동시에 복장도 순식간에 바뀌는게 보는 사람의 정신이 나갈거 같은 능력입니다.
이건 대체 무슨 장면인가..? 영화를 안 보셨으면 짐작조차 안갑니다.
어쨌든 알파 웨이먼드는 강력한 빌런인 조부 투파키가 세상을 파괴하기 전에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한 명을 찾아서 다중우주 세계를 떠돌고 있었는데요.
알파 웨이먼드는 그게 바로 현재 세상의 이블린이라고 생각합니다.(뭔가 익숙한 설정이네요)
조부 투파키의 추종자인 다중우주의 디어드리와 싸우면서 우여곡절 끝에 이블린은 무술 고수인 다중우주 세계의 자기자신에게 점프하게 되고 드어드리를 물리치게 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하지만 능력을 썼기 때문에 조부 투파키의 이목을 끌게 되었는데요. 위에서 언급했던 능력으로 조부 투파키는 이블린을 찾아서 ‘베이글’로 데려가려 합니다.
베이글은 조부 투파키가 모든 것을 집어넣어 만든 진리라고 설명해주는데, 대충 궁극의 무언가를 의미할 뿐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극 중 긴박감과 클라이맥스를 위해 사용되는 소품 중 하나이죠.
이블린은 조부 투파키가 조이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조이 안에 조부 투파키가 있기 때문에 자기 세계의 조이가 삐뚤어졌다고 여기는데요.
사실 다중우주의 조이인 조부 투파키와 이블린 세계의 조이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알파 이블린도 자신의 딸인 알파 조이를 한계까지 밀어붙였기에 정신이 깨져버렸고, 이블린 세계의 조이 또한 사실은 이블린의 과도한 기대와 간섭 때문에 삐뚤어진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그렇기에 조부 투파키와 조이는 동일 인물입니다. 이블린을 베이글로 데려가고 싶어하는 것도 딱히 자신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그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똑같이 느끼게해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죠. 조부 투파키는 그저 외로웠을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블린은 조부 투파키처럼 정신이 깨지면서 다중우주의 모든 자신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고, 결국 조부 투파키이자 조이인 자신의 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 베이글로 들어가 파멸하려는 조부 투파키를 막아서며 조부 투파키와 조이 둘 다 구하게 됩니다.
이제 다중우주는 안전해졌으며, 이블린과 조이, 웨이먼드는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해졌습니다.
이블린과 조이
사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지금까지 중요하게 다뤄졌던 다중우주 조차도 별 의미없고 다시 평범한 가족 드라마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중우주 부분만 빼면 식상하고 진부한 가족 드라마의 그것이지만, 다니엘 콴과 다니엘 샤이너트는 이런 진부한 재료로 한번도 맛 본적 없는 별미를 만들어냈네요.
영화 내에는 상징적이면서도 재밌는 소품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다중우주의 무술 고수인 이블린이 출연했던 영화인 ‘전가복’도 그러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전가복은 중국 요리 중 하나이기도 한데, 이름의 뜻은 ‘모든 가족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영화 내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죠. 다양한 재료를 넣고 한데 볶아서 만드는 조리법 또한 다중우주를 연상시키네요.
다중우주에서 가수의 능력을 가져온 이블린이 싸우는 장면은 영화 내에서 단연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그리고 조부 투파키의 복장과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 핫도그 손가락, 라카쿠니 등등 감독의 유머감각은 제가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라카쿠니
이 영화가 아직까지 걸려있는 극장은 몇 개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시간되시면 꼭 보러가세요.